Tragic Comedy

01. 고딩엄빠

매체란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지라 아마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 되었나 보다. 가십을 하다 하다 못해 이제 미성년 과거를 들춰 수치심으로 웃음을 파는 지경까지 왔다.

 어쩌다 인터넷 토막 뉴스 등으로 접했는데, TV를 보지 않기도 하지만 이 주제 자체가 나에겐 불편하고 불행한 주제여서 내용을 다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뻔한 내용이겠지. 어린 나이에 감당안되는 사고를 쳐서 모두가 힘든 상황으로 신파극을 벌이거나 분노를 자아내게 하거나 뭐 그런 것이 아니겠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부모의 행태를 보며 혀를 차거나 비난을 할 것이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수작일테니까.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에 대해서는 얼마나 공감을 할까? 소위 말하는 문제아들이 고딩엄빠의 많은 수를 차지할텐데 그런 문제아들이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을까? 단순히 밥을 먹여 몸이 자라게 하는 것만이 아닌, 그야말로 ‘심신이 온전한 정상인’으로 키울 수 있겠냐는 말이다.

 난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성숙하지 못한 결혼과 출산은 극렬하게 반대한다.

 

 난 고딩엄빠 프로그램에 나오는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출생을 내가 선택할 권리는 없었기 때문에 눈을 떠보니 목이 뻐근할 만큼 고개를 들어 세상을 봐야하는 기운 운동장 끄트머리 구석이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상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이 떠돈다. 난 비록 그 진실한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긴 하지만 막연하게 공감한다. 특히나 부모와 자식은 그 연이 매우 특별하기에 그 사랑이라는 의미를 쉬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경상남도 촌구석에서 20대 중반의 부친은 취업을 미끼로 학생인 모친을 꼬드겨 가출하게 한 뒤 함께 상경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둘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생각, 인성을 가지지 못한 불완전한 조합. 전형적인 문제의 고딩엄빠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런 사람들과 나의 원치 않은 악연이 시작됐다.

 내가 배정된 가족은 고통이 뭔지도 모를 만큼 어린 나이의 나에게 행동으로 고통을 깨우칠 수 있게 해주었다. 매일 같이 모친의 매질이 나를 향했고 자루가 달린 도구 뿐만 아니라 손, 발 등 닥치는 대로 무기가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맞은 이유는

 

첫 번째로 취업을 시켜주겠다고 부친이 자신을 속여서 서울로 데려와 임신을 시켰다는 점.

두 번째는 그로 인해 태어난 자식이 부친의 유전자를 받은 같은 남자라는 이유.

 

즉,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도망이라도 갈텐데 나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 자신의 인생이 더 망가졌으니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기억의 왜곡이 있지 않냐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계까지 몰린 경험이 있다면 그 기억이 쉽게 잊히거나 왜곡되지 않는다. 그 순간을 사진처럼 이미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난 아직도 이 모든 기억들이 또렷하다. 그들로 인해 겪은 고통의 기억은 시간에 비례해 용량이 늘어난 채로 뇌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그 당시 용산구 보광동의 어느 단독주택 단칸방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주인댁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부부였다. 아저씨는 말이 없었고, 아주머니는 활발했다. 아저씨는 고물상에서 쓸만한 장난감이 있으면 가져다 주었고, 교회를 다니던 대학생 누나와 성악하는 큰 형, 오산중학교에 다니던 막내 형은 항상 먼저 인사해주고 장난도 걸어주었다.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는 그 집이 항상 부러웠다.

이것보다 더 세부적인 것도 기억한다. 몸에 고통이 한 번 가해질 때마다 모두 사진처럼 찍힌다.

매번 마당에서 개 패듯 두들겨 패는 모친을 막아준 것도 주인댁 아주머니였다. 얼마나 심했는지 아주머니가 모친을 심하게 나무라기 까지 했다. 그래서 주인댁이 모두 일하러 나가 집이 비면 두려웠다. 그 날은 돌아버린 모친의 눈이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항상 분노에 쌓여있다가 트리거가 당겨지면 속된 표현으로 눈이 뒤집혀서 폭행을 가하는데 록커가 무대에서 헤드뱅을 하며 몸지랄을 벌이는 듯 혹은 무당이 귀신을 얹은 듯 온 몸을 써서 두들겨 팼다. 세상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보면 희극이 아닌가? 이 꼴을 상상해보면 헛 웃음이 나온다. 모친은 인간이기 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이러면 심한 표현이겠지..? 짐승도 모성애는 있으니까. 개도 자기 새끼는 안무는데 말이지. 그는 악마였다.

당시에는 항상 거의 울다가 혼절 직전까지 갔는데 내가 대략 4~5살 쯤이니 모친은 22~23세로 신체적으로 한참 힘이 넘칠 전성기였다. 잘 나가는 프로복서가 입문자를 전력을 다해 두들기면 어찌 될까. 10이면 10 구급차에 실려나갈 것이다. 그래서 그저 아프고 마는 것이 아니고 처참한 수준까지 갔다. 고작 5살짜리가 잘못을 해봐야 얼마나 큰 잘못을 하겠는가? 마당에서 맞다 도망가면 머리채를 잡히고 어디 가릴 것 없이 맞다 쓰러지면 짓밟혔다.

 

시장에서 처음 생떼를 부리다 사람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머리가 젖혀질 만큼 뒷통수를 후려 맞고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뺨을 수차례 얻어맞으며 각성된 이후로 난 생떼도 부릴 줄 몰랐다. 이것이 조기교육인가?

자루가 달린 집기들은 닥치는 대로 들고 두들겨대서 남아나지 않았다. 너무 맞아서 반 정신을 놓고 변을 지려 빨래감을 늘렸다는 이유로 또 맞았다. 저녁에 얻어맞다 울음소리를 크게 내어 주인댁에서 사람이 오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속옷 한 장 입고 한 겨울밤 대문 밖에 벌벌 떨며 서있기도 했다.

감기에 걸려 앓았다는 이유로도 욕설과 매질을 당했다. 앓는 소리 내서 짜증난다는 이유였다. 난 이때 아픈 것도 혼나야 되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후에 여동생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넌 나보다 더 아프니 더 잘못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해댔다. 내가 동생을 비난 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그 몰상식의 세계가 전부였던 탓에 물이 들여져 갔다.

한쪽 팔이나 머리채를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해놓고 빗자루 여러 대가 부러지도록 다리와 엉덩이를 맞다보니 피할 수 없어 대부분 피멍이 들고 심한 경우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나기도 했다. 이렇게 복날 개 잡듯 두들겨 맞고 밤이 되면 눕혀놓고 연고를 발라줬다. 핸드폰 방전되기 전까지 쓰다가 다음 날을 위해 충전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세 살 아래의 여동생은 자신과 동일시 하며 감싸고 돌았다. 똑같이 잘 못을 해도 여동생은 잘못했다고 빌면 쉽게 넘어가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나에겐 눈알이 뒤집혀 동생의 몫까지 나에게 다 풀어댔다. 온 몸에 피멍이 들어야 끝났다.

이런 일들은 내가 체격이 역전되던 중3 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앞으로 언급할 여지가 많아 이 쯤 한다.

 

길을 가다가 5살 언저리의 애들을 가끔 보면 ‘이런 작은 애들을 도대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감정을 실어 죽일 듯 팼을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후에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들은 말로는 심지어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집어던져서 너의 머리가 찌그러진 것이라며 무용담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지껄이며 깔깔대는 것도 들었다. 그 자체가 악마다.

 

난 무슨 죄가 그리 큰 것인가?

 

“출산을 당한 죄”

 

위애자위모미(蝟愛子謂毛美),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 라는 말이 전해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 경험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제 자식을 이뻐함이 과하면 과했지 수시로 눈 뒤집혀 미친 듯이 발로 밟아대는 부모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런 희박한 확률의 인연이 왜 하필 나에게 주어진 것인가?

 

어느 정도 당위성이 있는 간헐적인 체벌은 나도 수긍한다. 하지만 그 본성이 악마가 아니라면 과연 이 정도 폭력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최소한 자신의 자식을 피떡이 되도록 때린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돌아봤다면 그것이 누적되어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곰도 100일 마늘 먹으면 사람이 되는데.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높은 가능성이 있다.

 

난 이 집의 자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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