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부친개
비가 올 때는 부침개에 술 한잔이 땡긴다. 왜 그런지 과학적인 이유가 있나?
난 개를 좋아한다. 폭력배인 모친이 개를 좋아해서 줄곧 개를 길렀다. 언젠가 데려온 강아지가 눈도 못 뜬 어린 놈이어서 병에 걸려 며칠 만에 죽은 적이 있었는데 오열을 하는 모친을 보며 의아했다. 날 부침개 마냥 발로 밟아 피떡을 만들면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그렇게 흘려댔으니 말이다. 그때 난 깨달았다.
난 개보다 아래였구나.
그래도 난 개를 원망하지 않는다. 개는 사랑이다. 피떡 시즌에도 날 위로하는 건 개 뿐이었다. 물론 개가 사람 친화적이긴 하지만 나는 처음 보는 사나운 개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편이다. 동족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그 아래라고 가여워하는 건가?
여튼 죽는다는 것은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다. 고타마 싯타르타, 즉 부처는 이 죽음에 대해 충격을 받고 출가를 했다고 하니 말이다. 아마 미운정이던 고운정이던 같은 동족이라면 공유할 수 있는 여러가지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이 안타까워 더 슬프고, 나 또한 피할 수 없기에 슬픈 것일까. 그렇다면 날 피떡되도록 팰 때는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다가 개가 죽었다고 오열하던 모친의 종족은 어느 쪽인가?
부친은 개보다 눈에 안보였다. 내 기억 속에 부친은 거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오히려 집에 있으면 더 싫었다. 모친 분노의 원죄자이기 때문에 개싸움이 일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추하다는 개념도 모르는 나이었지만 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 개들 마주 보고 몇 번 짓다가 엉겨서 뒹굴고 물어뜯고 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채를 잡고 상호 주먹질, 발길질에 안다리, 밭다리 걸고 넘어뜨리는 등 지금이라면 UFC 못지 않는 재미로 느꼈을텐데,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 성인들이 폭력을 쓰는 것을 사회에서 경험하지 말라고 R석에서 미리 몸소 밑바닥까지 보여주시는 자비로운 부모. 그러다가 모친은 결정적으로 제 화를 못이겨 게거품을 물며 뒤로 고꾸라지면 이 무대는 끝이 났다. 그럼 겁많은 부친은 혹여 뭐 사고날까봐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와 먹이면 모친은 사자후를 내뱉고 오열을 했다. 마치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 현실화 된 클라이막스랄까? 난 사람이 거품을 무는 것을 어렸을 때 이렇게 종종 봐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집이 엉망이 된다는 점이다.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때려 부수는 모친의 기행 때문에 정말 지옥이 되었다. 자신이 때려부순 집기들과 잔해들을 스스로 치워야 하는 스트레스가 또 나를 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이면 부친은 또 개처럼 사라져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나로써는 이래도 저래도 밑바닥은 매한가지인 상황이었다. 꼬투리 잡힐까봐 눈치만 봐야했다. 이게 채 8살이 되기 전 매주 수차례 있던 사건들이다.
언젠가 한 번은 부친이 집에 있을 때 맞아서 피멍이 든 허벅지를 몰래 보여주며 모친에게 맞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구조요청이었다. 그러자 부친은 ‘왜 애를 때리냐’며 질책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모친이 소리를 질러대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옷을 입고 또 나가버린다. 그럼 남은 나는 밀고죄까지 더해져서 더욱 강한 폭행을 감내 해야했다. 부친은 개보다 못했다. 내가 밟히는 순간에 개는 짖어주기라도 하는데 그는 마치 남인 듯 죽던 말던 그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개도 그 상황을 알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뭔가 역동적이어서 같이 리듬을 타는 것인지는 몰라도 계속 짖었다. 그땐 순수한 때여서 때리지 말라고 짖는 줄 알았지. 동화와 현실은 다르다. 개는 개다. 결국 밥을 주는 모친에게 들러붙었다.
부친은 패스 성향이 있다. 싸이코인지 쏘시오인지 몰라도 인간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있다. 공감이란 것을 전혀 하지 못한다. 과연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인데 이건 이어지는 이야기에 후술할 것이다. 사람은 자라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어떤 힘든 성장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지만 – 물론 관심도 없다만 -, 성인이라면 스스로 당했을지언정 고통은 나에게서 끊어내야지 그것을 남에게 풀어 본전 찾으려 하면 안된다. 난 상상도 하지 못한 처참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것을 티를 내거나 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줄 알고 있다.
모두가 크게 과거를 털고 가자는 의미로 사과를 받고 화해하려 만든 자리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에 인정이나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뭐가 잘못이냐는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예상대로 인간 이하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내 분노가 어긋나 표출되지 않도록 스스로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것으로 절충했기 때문이다.
부친은 그 당시 9급 공무원이었는데 지금과 달리 공무원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그래서 근무여건은 열악했던 것 같다. 비상이다 숙직이다 하면서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오히려 집에 안들어올 수 있는 명분이 있어서 즐기는 느낌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직장 내에서의 평판은 좋은 것 같았다.
이게 오히려 내부자들에겐 독이었다. 외부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 조차 이렇게 좋은 남편, 아빠 속을 왜 그렇게 썩이냐며 핀잔을 줬는데 이 이중성의 정도가 쏘시오패스 급이다.
남들에게 세상 좋은 사람처럼 다 퍼주며 환심을 사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그들에게 공격 대상을 비난하는 여론을 만들어 뒤로 숨은 채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짓을 습관적으로 했다. 공격 대상이 가족이라는 것 자체도 패스의 높은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항상 위기의 순간을 피하기만 하고 남의 힘을 빌어 손 안대고 코 풀려 한다.
매일 맞다보면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폭행의 정도가 너무도 지나치기에 위압감에 눌려 말을 못하게 된다. 거의 벙어리 못지 않게 말수가 없었다. 부친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패스의 성향이 있어서 누군가 문제가 있어보이면 살필 생각을 하지 않고 좁디 좁은 자신의 기준으로 100을 판단해서 나를 항상 대놓고 비난했다.
너무 어려서, 그리고 너무 많이 맞아서 닫은 입. 누군가 말을 걸면 서글퍼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넌 남자 새끼가 말도 못하고 툭하면 울고, 병신이냐?’
기억나는 것이 부친의 직장 동료였던 것 같은데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일반적이라면 아들이라고 인사하라는 식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대뜸
‘남자새끼가 내성적이어서 병신처럼 말도 한마디 못하는 놈, 저거 문제다 문제 쯧쯧’
이런 식으로 날 소개했다. 오히려 그 아저씨가 뭐 그렇게 까지 말하냐는 식으로 나올 정도였는데 저 말은 매일 입에 달고 다니며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기저기 다 말해놓아 진짜 내가 말을 못하는 사람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난 성인이 되어서 상대가 사람의 기본 수준을 가지지 못했다고 판단하면 대화 자체를 하지 않는다.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가족이라는 허울로 그 모든 잘못된 것을 정당화하는 일 자체가 학대고 고문, 역차별이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해야 부모의 대접을 받는 것이고 자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직도 뭔가 착각하고 있다. 내가 대화를 피하고 하지 않는 것이 저런 이유인 것을 모르고 원래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가 없는 거라고 합리화 하고 있다. 자아성찰로 인한 변화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빠르게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게 도태되어 소멸되는 것이다.
아직도 부친의 개보다 못한 양심 없는 짓들은 변함이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분노가 땡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