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gic Comedy

03-01. 무흔적

# 무흔적

난 사진이 거의 없다.

얼마 없는 그나마의 유년기의 사진 몇 장에서의 나는 항상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어린 꼬마 얼굴에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슬프다. 일반적으로 꼬마들은 사진찍히는 것을 좋아하거나 찍히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난 싫었다. 어린 시선에서도 자신이 얼굴이 찡그리고 있는 사진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사라지거나 일부러 얼굴이 나오지 않게 가리곤 했다.

그 흔한 놀이공원에서의 사진, 추억 같은 것도 없다. 놀이공원을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 가봤다. 어찌나 재미 있던지 해질 때까지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 뿐만 이겠는가 어린 또래들이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단 하나도 경험하지 못했다. 부모의 격투나 나에 대한 일방적인 매질 이것이 유년기 기억의 전부다. 그래서 사진이 없는 편이 유년기 시절을 다시 떠올리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낫다.

중, 고, 대학교의 사진은 졸업사진 뿐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으니까. 그나마 대학교 때는 인상을 찡그리지는 않았지만 중, 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은 당장에 누굴 때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나마도 없다. 과거를 통으로 지우지 않으면 스멀스멀 자꾸 그 때 생각이 떠올라 괴로워지기 때문에 챙기지 않아 이사하다 버렸는지 어쨌는지 모른다.

 

난 흔적이 없는 존재다.

대학교 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사진 촬영이라는 것은 그래서 아이러니이다. 정작 나 자신의 추억을 담아본 적도, 사진도 없으면서 남의 사진을 찍겠단 말인가? 남들은 모두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난 가지고 있지 않는데 말이다.

사진을 찍을 때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을 보면 왠지 행복하다. 난 그렇게 웃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기꺼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하고 부럽다. 난 찍어준다고 부탁을 해도 어릴 때 그 찡그린 얼굴을 또 볼 자신이 없어 피하는데 말이다.

슬프면서도 즐겁다. 행복했던 그들의 추억이 뭔지 솔직히 잘 모르지만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공유받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 흔적 절단기

매질의 빌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정리정돈이다.

집에 뭔가를 사용하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지 않으면 이것도 꼬투리가 될 수 있어서 어릴 때 부터 관찰력이 뛰어나게 되었다. 원래 자리에 어떻게 놓여있었는지 또 그 옆에는 무엇이 어떤 식으로 놓여있었는지 알아야 사용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원상복귀를 시키기 때문이다. 이래야 폭행의 빌미를 남기지 않게 된다. 홀로 밥을 챙겨먹어야 할 상황에서도 그릇의 위치와 숟가락이 꽂혀있는 방향 등을 모두 기억하고 설거지를 한 후 원래 자리에 각도를 맞추어 원위치 시켰다. 그래야 모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원래의 모습을 기억한다.

마치 간첩이 작전을 하듯 어딜 가던지 주위에 무엇이 어떻게 몇 개가 있고 몇 번째 테이블에 그릇은 어떤 순서로 정렬이 되어있는지 등 가능한 샅샅이 기억을 해둔다. 또 눈치를 보는 버릇 때문에 사람들이 어느 테이블에 앉아있고 옷차림은 무엇이며 감정은 어떠한지 표정을 살핀다. 유년기 때 이런 것들을 살피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며 맞던 기억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직관은 그래서 탁월하다. 조기교육을 받은 셈. 모친의 기분이나 집안의 분위기를 눈치로 빠른 정보 수집 후 조합,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흐름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경우의 수로 나열하여 일어날 일을 미리 예상한다. 추론 된 결과보다 한 두 수 앞을 보고 행동한다. 그래야 매질을 피할 수 있다.

매질이 심하면 심해질 수록 회수가 더 잦아질 수록 난 점점 치밀해졌다. 반복된 경험 누적이 정보의 신뢰성을 매우 높였고 회피 대상인 모친의 행동패턴을 계속 추가함으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적중률은 높아졌다. 중학생 부터는 뭔가 사건이 터질 때부터 결과를 예측해내고 화를 피했다.

 

어느 것이든 일장일단이 있기에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다. 군에 입대해서는 재빠른 분위기 파악과 뭘 해도 티를 내지 않아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위기를 잘 피해갔다. 이런 버릇들이 생겨난 환경이 목숨을 건 위험한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와 가장 유사한 군대에서 빛을 발했던 것이다.

평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이 과정을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정보의 방향이 독서를 통해 확장되면 바로 통찰력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알게 된다. 삶에 이 통찰력이 들어오면서 상황을 미리 파악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내 의도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나의 행동 방식은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크다.

 

어린 나의 최대 천적은 모친이었다. 강자였고, 난 약자였다. 힘의 구도 차이에서 오는 짓누름은 이겨낼 도리가 없다. 헤비급의 잽 한 번에 초보자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을 매일 겪었다. 그래서 뭔가 하려고 해도 무력하기만 한 약자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더불어 약자를 상대하는 강자의 비겁함을 경멸한다. 대부분 옳지 않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관철시키려 할 때 강자는 약자에게 힘을 쓴다. 그래서 난 부서질지언정 상대로 강자를 택한다.

가족 중 나의 편은 아무도 없는 적대적인 긴장 속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피아식별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부친은 가족보다 잘 모르는 사람들 편에 섰다. 난 그래서 반대로 외부 사람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챙기는 사람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뿐이다. 

더욱이 아끼는 내 사람을 강자가 해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꼭 되돌려준다. 가벼운 경고, 협상에서 끝내지 않고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다. 어릴 때의 분노가 무의식 중에 녹아든 탓이 크고, 부모에게 수도 없이 겪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과연 강자가 잘못한 점을 반성하고 고쳐 약자가 되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힘을 절대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원인이 되는 그 힘을 다 잃도록 만들지 않으면 다시 약자를 몇 갑절 더 괴롭힌다. 잡초는 뿌리까지 다 뽑지 않으면 다시 무성해진다.

여러 번의 종합적인 판단 후에 결정을 내리고 아무 감정 없이 절단을 낸다. 나나 상대나 둘 중 하나는 파국이다. 하지만 아직 까지 난 진 적이 없다. 치밀하게 설계하고 플랜B, C를 둔 채로 아무도 모르게 실행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모친의 살인 매질로 몸이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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