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중립시대
중학생이 되었다.
몸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것은 모친과 나의 역학구도가 바뀌어감을 의미했다. 사춘기가 왔고 정신은 혼란해졌다. 그동안 당한 학대에 대한 분노가 시시때때로 폭발했다.
몸이 자라고는 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작았다. 작은데도 매일 동급생과 시비가 붙어 1교시 시작 전 부터 교실에서 싸워댔다. 폭력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갔다. 이게 내가 이 집구석에서 배운 것의 전부다. 책상을 밟고 되도 않는 날아차기를 하거나 되지도 않는 텀블링까지 해가며 상대방과 뒤엉켜 정신이 이상한 놈처럼 굴었다.
이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매일 같이 쬐만한 놈이 꼴값을 떠는 것을 지켜보던 맨 뒷줄 일진이 어느날 나를 불러내서 그만 나대라고 흠씬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일진은 나쁜 의미인데 이들은 학급의 경찰 역할을 수행한 훌륭한 학생들이었다. 가만 생각하면 덩치 큰 유전자가 나에게 있었다면 난 이때부터 일진의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댈 수가 없었다.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어차피 잘해도 욕, 못해도 욕이면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은 없는데 성적을 잘 못 받으면 그걸 빌미로 또 분위기가 안 좋아졌고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들을 들었다. 더욱 더 학업에 대한 관심은 없어졌다.
7대 죄악 중에는 탐욕(Greed)이 있다. 과도한 물욕이다.
능력은 안되는데 이들은 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기겠다며 극빈함을 강요했다. 목동은 그 전에 살던 동네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고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친구가 많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고 같은 동에 살던 몇몇은 내가 함께하기를 원했다. 자전거가 없어 혼자 집구석에 쳐 박혀서 하루종일 욕이나 듣고 않아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서 모친에게 자전거를 하나 사달라고 말을 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거 두눈으로 다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너는 아무 것도 할 생각을 하지를 말아라. 밥 먹여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라며 화를 냈다. 폭언, 욕설, 폭행으로 다져져왔지만 그때는 왠지 서글퍼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난 여기서도 결국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일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고립감을 떨칠 수 없었다. 내 본성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원한다. 반면 외로움도 잘 견딘다. 훌륭한 부모 덕분에 어릴 때 부터 난 항상 또래와 함께할 수 없어 혼자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동네 또래들은 교육을 잘 받아서 인지 바르고 착했다. 여러가지로 모자라던 나를 어떻게든 끼워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 기본도 채워가지 못했기에 난 방구석에 쳐 박혀있어야 했다.
그렇게 극빈함을 강요했지만 먹고 살만 했나보다.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동생 하나 더 있으면 어때?’
이런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바로 싫다고 했다. 나이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무슨 죄가 있다고 새로운 생명을 이 지옥구덩이에 떨어뜨리려 하나. 도대체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자기 반성이 될 리가 있나.
가끔 TV에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보면 멈추지 않고 아이를 계속 낳아서 7~8남매 등 어이가 없는 사람들이 출연한다. 도와달라고. 이성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본능에 따르는 그런 사람들. 제멋대로 해놓고 힘드니까 도와달라는 사람들. 결국 내 부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즈음 집에서 폭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말 이모들이 놀러왔는데 모친이 대놓고 인신공격을 나에게 퍼붓고 비난을 하며 이모들 앞에서 날 공개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들며 주방 기구로 머리를 툭툭 쳐댔다. 이 사람의 본성이 이렇다. 자신이 강자일 때는 1:1로 학대를 가하다가 이제 그것이 부담스러우니 다른 무리를 끌고 들어와 내가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보는데 설마 자식이 부모한테 대들겠어?’ 이런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예전의 꼬마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혀서 또 내 머리를 치려던 주방기구와 팔을 잡아 쳐내고 헤드락을 건 동시에 허리 후리기로 냅다 바닥에 꽂아버렸다. 이모들 모두 놀란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학대 당한 사실을 이모들은 모르기에 역시 날 패륜아 취급했다. 황급히 가방을 집어들고 집을 나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친구와도 어울릴 수 없고, 집에 편히 있을 수도 없고 사막 한 가운데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당연히 스마트폰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책을 사서 읽었다. 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도 종종 썼던 것 같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라 혼자 있는 시간을 의미있게 쓴 것 같다. 삼국지를 한 권씩 사서 다음 권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이기 전까지 읽고 또 읽었다. 아니 세상엔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나의 현실과는 전혀 상반되는 사람들의 모습에 현실 도피에는 제격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봐온 어른들은 못나도 이렇게 못날 수 없는 부모와 촌지 안가져오면 두들겨패던 학교선생들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학원 여선생님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월반으로 형들과 수업받는 내게 주눅들지 말라고 수시로 챙겼다. 이 선생님의 모습은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도 얼굴이며 전라도 사투리 등 아직 기억나는 것은 처음 느끼는 상냥함이었기 때문이었을 듯.
초등학교 때 보던 수준의 책을 벗어나니 재미가 붙었다. 돈이 없어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빌려서 읽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다. 남는 시간엔 스케치북 사서 그림을 그렸다. 어차피 친구들과는 어울릴 자격이 안되기 때문에 혼자 해야하는 것을 해야했다. 공부는 안했어도 책은 꾸준히 읽었고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방법을 몰라서 그냥 막 그렸다. 중학교 2학년 즈음인가 미술수업에 소묘 단원을 나가면서 명암을 넣는 것을 배웠다. 혼자 할때는 방법을 몰라 연필로 색칠을 했는데 선을 겹쳐서 해야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허나 매일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명암 넣는 방법만 바꾸면 되었다. 중간 실기 때 영국 가수 조지 마이클의 사진을 들고가서 그렸는데 급우들이 몰려들어 탄성을 질렀다. 그림이 잘 나왔다.
그렇게 탄성을 지르던 중 몇몇이 나에게 관심을 보여 친해지게 되었는데 여기서 부터 또 알 수 없는 길로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끄러운 음악을 귀에 달고 사는 메탈 키드 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신문물을 접하고 나도 바로 빠져들었다. 분노를 표출하듯 질러대는 파괴적인 음악이 곧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매일 음악만 들었다. 마침 막내이모에게 사용하지 않던 통기타를 얻게 되었다. 책처럼 기타 또한 혼자 시간을 보기에 더 없이 훌륭한 도구 였다. 당연히 학원이나 레슨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아둔 용돈을 들고 항상 가던 서점에 가서 교본을 하나 사와서 그것을 펼쳐두고 기타만 쳤다. 어차피 이 부모는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등의 그런 목적은 애시당초 없었기 때문에 공부 안하던 말던 관심도 없었다.
이 즈음에는 집안에 구성원이 다 있어도 서로 말을 안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이러지는 않을텐데 이제 폭력이 안 통하니 무관심, 방치로 넘어갔다. 이미 공부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거의 중위권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이제는 나를 이걸로 두들겨 팰 수가 없는 관계가 되었기에 욕하면 욕을 먹으면 됐다.
그냥 그렇게 3류의 삶으로 접어들어 갔는데 이 때는 이것이 3류인지 5류인지 관심도 없었다. 나에 대한 폭력은 사라진 중립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바람잘 날 없는 이 집구석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