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대형사고
아파트 단지에는 같은 동 아주머니들의 모임 같은 것이 있었다.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는 먼저 새로운 세대에 친한 척을 하며 세를 불리는 중이었던 것 같다. 별 관심 없어서 그냥 대강 그랬던 것 같다. 그 모임의 내 또래 아이들을 간간히 보긴 했는데 난 성격이 이미 모날 대로 모나서 그들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 친해지지는 못했다. 환경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인성을 형성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폭력과 폭언으로 버무러진 나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한 말들을 그대로 다 뱉어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다. 이러는 날 악마 록커들은 성깔 있다고 좋아하던데.
뻔한 수법이긴 한데 그 모임 구성원 중 한 아주머니가 모임에서 돈을 소소하게 계속 빌리고 갚기를 반복해서 신뢰를 쌓은 후 구성원 전부에게 거액을 빌려서 해외로 야반도주했다. 집 밖을 나가면 초식 바보가 되는 모친도 거절을 못하고 거액을 빌려준 모양이었다.
뭐.. 난리가 났다. 목동으로 이사오고 그나마 좀 줄었던 양친의 개싸움이 또 시작됐다. 뭐 사실 입이 열개라고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 이런 상황이면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모친은 자살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칼을 들고 자신의 목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며 ‘내가 죽으면 되냐!’고 부친에게 협박을 했다. 난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 듣기 싫고 꼴도 보기 싫었다. 여동생은 계속 울고 있고…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를 사기를 당하고 이런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내 알바가 아니다.
집안은 급격히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했다. 빚까지 내서 돈을 빌려주는 바람에 목동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했다. 건너편 재개발 지역의 단독주택으로 쫓겨갔다. 그런데 나로써는 크게 동요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현실도피 중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사 후에 둘은 매일 싸웠다. 죽네 마네. 너 때문이네 뭐네. 집안은 항상 부서진 집기가 나뒹굴었고 모친은 또 자기 화에 못 이겨 게거품을 물고 바닥에 널 부러졌다. 매일 이혼을 하네 마네 얘기가 나왔다. 탐욕을 그렇게 부리며 극빈함을 자처하고 강요하더니 결국 남은 것이 이 꼴이다. 우매하다. 돈을 써야할 때 쓰지 못해 놓칠 것들을 다 놓치고 쓰지말 곳에 다 몰아넣어 극빈자가 된다. 천민 노비가 상승할 수 없는 이유다.
고등학교에 갔다. 그들은 원래 자식들에게 관심도 없었지만 싸우느라 더 관심이 없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갔지만 여튼 학군이 목동과 묶여있어서 학교는 목동 사는 정갈하고 부유한 아이들 사이에 끼어 다녔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 내가 있는 느낌이 들었기에 공부는 뭐 남의 일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록음악을 틀어주던 라디오를 들으며 엎어져 잤다.
그러다가 1년 동안 모아놓은 용돈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샀다. 낙원상가에서 기타 팔이놈들에게 눈탱이를 엄청 맞고 그냥 소리만 나는 브랜드 없는 기타였지만 가슴이 뛰었다. 껍데기 뿐이라 생각했는데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현실도피를 넘어 현실을 탈출했다.
‘나는 악마의 록커다’
주말에는 자칭 록커 친구들을 만나 되도 않는 실력으로 합주실을 빌려서 연주를 하며 보냈는데 역시 질 나쁜 놈들과 어울리다보니 술과 담배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맛도 없고 기침만 났지만, 강한 척을 하는 것이 이 나이 대의 심리다 보니 지지 않으려 고통을 참고 몸에 독을 쏟아부었다. 술은 만나자마자 먹었다. 그래야 집에 들어갈 때는 냄새가 안 날테니.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그들은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분위기는 뻔했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 고요하거나 이미 1라운드가 시작되거나 다 끝나고 난장판이 되어있거나. 여동생은 또 울고 있고.
이때는 나도 항시 우울함을 달고 있었다. 모친은 어렸을 때 부터 집에 있을 때 부친에 대한 욕과 험담을 했다. 그것이 계속 이어지니 나도 세뇌를 당했다. 그리고 부친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중간에 브레이크를 걸었음직도 한데 부친도 하는 짓들이 개차반이라 모친 의견에 설득당했다. 그 주된 내용은 외도에 관한 것이었다.
‘니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돌아다닌다.’
아무리 악마의 록커라지만 난 미성년자였다. 어린 마음에 이게 큰 충격이었다. 이것은 배신, 반역이 아닌가? 내가 읽던 책 속의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홀린 듯 어느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돌아와서 모친에게 이끌려 유흥가 가게들을 하나 하나 돌며 부친을 찾아다녔다. 현장 물증을 잡아야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에 난 그렇게 유흥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결국 부친은 찾지 못했다. 의부증일까?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실제 부친은 여성 문제가 좀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 잦았고, 이 문제 또한 어느 한편에 가중치를 줄 수 없는 똑같이 추찹한 수준의 바닥인생 에피소드이다.
공무원의 급여는 지금이나 그때나 뻔한 수준이라 빚을 상환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을 했는지 사업은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빚을 더 내서 닭 바베큐 집을 차렸다. 부친은 책임감이 없고 옹졸해서 자기 수입이 적은데 왜 일 안하냐고 모친을 눈에 가시로 보았다. 헌데 자진해서 뭔가 해보겠다고 해서 인지 한 동안 싸움이 없었다.
여튼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절반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부친이 나를 불러앉혔다.
‘대학을 갈거면 한 번에 가라 돈 없어서 재수같은거 못 시켜주니, 대학 못가면 공장이나 다녀라’
아니 도대체 뭘 해줬다고? 이런 말을 하지? 이때는 이미 소위 대가리가 컸기 때문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목동은 학구열이 높은 동네였다. 그런 동네에 살면서 아예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학생들 치고 학원, 과외 이런 사교육을 안 받은 이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포기된 존재였다.
본인들 잘못의 지분이 큰 이 가계 파탄 상황에서 마치 사교육 때문에 집안이 어려운 것 처럼 뒤집어 씌웠다. 매일 돈없다고 둘이 게거품을 물며 싸우는 것을 뻔히 보았고, 마치 하겠다고 하면 대역죄인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난 결국 과외 받기를 거절했다. 목동 학군에서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을 것이다. 악마의 록커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현실에서 자리 비움 중이었지만 나는 아직 힘없는 미성년자였다. 진짜 이러다 공장에 가는 것인가?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면서 성적이 안 좋은 것 아니까 한 과목 정도는 과외를 시켜주겠다고 제시했다. 그러자 옆에서 모친은
‘그래 과외 해! 돈도 없는데 해! 밤까지 이렇게 고생해서 돈 버는데 과외 해라 해!’
라며 압박을 해댔다. 상황이 참 웃기지 않은가? 현실로 돌아온 나는 또 옛날의 말도 못하는 꼬마로 돌아가 있었다. 과외는 안하겠다고 했다. 동생과 3년 차이라 동생도 중3이 되는데 어느날 보니 동생이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도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아니 난 대학을 가야하는데…. 이 부모라는 것은 상황 판단이 전혀 안되는 인물들이었다.
평소에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를 한다. 친구를 사귈 수 없어 홀로 책을 읽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활자에 익숙해서 글을 빨리 읽어냈고 필자의 의도, 문제 출제자의 의도도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일단 뛰어넘고 쉬운 부분부터 확실히 하면서 간극을 좁혀갔다. 그 와중에 야간 자율학습 시간 매일 엎어져 들었던 록음악 덕분에 듣기평가를 비롯한 영어는 성적이 금방 올랐다. 나머지 영역 또한 참고서를 읽고 또 읽어서 간극을 좁혀갔다.
그 와중에도 하교해서 집에 가면 닭집 장사가 시원치 않은 것으로 매일 같이 싸워대고 고성이 오갔다. 내가 아직도 이들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 수능 전날에도 집에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머리채 붙들고 다 때려부수고 게거품 엔딩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난 대학에 갈만한 성적을 받았다. 잘되면 전문대, 아니면 공장에 보내려던 부친의 계획은 빗나갔다. 난 4년제에 합격을 했다. 그날도 둘은 돈 때문에 싸웠다.
항상 나의 에너지는 분노다. 이 분노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불태우듯 목표를 이뤄낸다. 하지만 표현을 안 할 뿐 내상을 심하게 입는다. 잠시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만 정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피폐해진다. 목표를 이루며 여기저기 갈갈이 찢겨나가지만 회복할 수 있는 위로를 받을 나의 편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남는 것은 타고남은 잿더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