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몇 시지…?’
더듬대며 핸드폰을 찾는다.
가슴에 불을 떨어뜨린 것처럼 뜨거워 견딜 수가 없어 잠을 설쳤다.
이미 식은 땀으로 잠자리는 반 젖은 상태이다.
3시 반. 오늘 일정이 있는데 또 잠을 설쳐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잊힐 만도 한데 끝없이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인연을 오래 이어나가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같잖은 유교 문화의 세뇌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사이비 종교에 세뇌당한 자들이 자신들이 죽어감에도 그걸 놓지 못하는 심정을, 전부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이해한다.
미미한 개별 인간으로 혼자 ‘아니오’를 말하기엔 그때 난 단단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나의 성격이 많은 부분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동경하는 대상을 따라가려는 인력보다 혐오하는 대상의 반대편으로 가려는 척력은 몇 배가 강하다.
자연적으로 반면교사가 작동한다. 그들의 공이 크다.
사람의 추함의 끝을 직접 눈으로 보여 주었기에 난 극단의 매너와 예의를 찾게 되었다.
물론 그저 그렇게 젖어들어 똑같은 추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나 또한 노비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뻘에 빠져 허우적 댄 까닭에 물 한 번 끼얹어 온전히 다 씻어낼 수 없었다.
인간의 7대악이 고스란히 녹아든 행동들을 봄으로써 무의식에 파고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계속해서 씻고 또 씻어냈지만 다 씻겨나가지 않았다.
그런 채로 남에게 뻘을 묻힐 수 없기 때문에 닿지 않도록 항상 긴장 속에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냥 마음에 담아두니 더욱 세게 불길이 치솟는다. 이렇게라도 표출을 해서 불이 더 번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난 그들과 달라야 한다.
‘Lex Talionis’ 동해보복법. 이것은 내 삶의 원칙이다.
그들이 나에게 가한 정도를 내가 똑같은 정도로 돌려준다면
난 버텨냈지만, 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것이다.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꽉물고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혹시나 이런 일들을 얘기하면 핑계나 대는 패배자로 손가락질 받을까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허나 이것은 직접 겪지 않고는 그 고통을 절대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이기 때문에 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다.
오늘도, 매 시간, 매 분, 매 초 난 더러운 뻘을 씻고 남에게 묻히지 않기 위해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